미국 동부 여행기
□ 여행기간 : 2002. 9. 2 ~9. 9
1. 준비
업무적으로 뉴욕에 출장을 가야할 계획이 있었다. 미국여행에 필요한 비자를 획득해야 하는 데 일정이 촉박하여 비자 신청은 여행사로 하여금 하게 하고, 직접 인터뷰를 하여 비자를 받기로 했다. 그래야 계획된 날짜에 출국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비자를 받는 기회에 집사람도 같이 받기로 했다. 나의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 하나면 집사람도 같이 받을 수 있으니 나중에 집사람 혼자 따로 받을 때 겪을 번거로움을 피해보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여행에 집사람도 동행을 하면 비용도 절약되고 또 업무도 그리 중한 것이 아니니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은 회사 공무출장에 집 식구와 같이 간다는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생각해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여행사에 비행기표 예약을 해 놓고 요금까지 결제를 하였는데 막상 비행기표를 가져오겠다는 날 가져오지 않아 독촉을 하니 waiting이란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고 하더니 정말 믿을 놈 없다. 사실 이번에 이용한 여행사는 우리 실장이 추천한 회사라고 사무실 담당직원이 이야기하여 믿을 만한 곳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업무적으로 항공사와 관련이 있는 우리회사 다른 부서에 부탁을 해서 간신히 비행기표를 구하기는 했다.
출장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남는 시간을 할애하여 처음 가는 미국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좀 배워볼 생각으로 여행에 관한 자료를 여러 곳에 부탁하기도 하고 또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았으나 내 마음에 맞는 그런 여행상품은 없었다. 그중 우리회사 뉴욕사무소 직원이 소개하는 여행상품이 마음에 들기는 한데 내 출장계획보다 하루를 더 미국에 체류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머릴 돌려보다가 한가지 생각을 해냈다. 귀국 시 새벽비행기로 도착을 해 그 날 바로 출근을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토요일 하루 휴가 내고 월요일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그러니까 9.2 오후 인천을 출발하여 9.9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8일(5박 6일)간의 일정을 세웠다.
□ 9.2. (월) ... 서울시간 및 현지시간
2. 출발
평소 아침 같으면 출근을 해야할 시간이지만 출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우선 신문을 읽고 샤워를 하고 애들의 동태를 살핀다. 오늘이 학교 개강 첫 날이라 서두를 것 같기도 한데 아직 한 놈도 일어나질 않고 침대에서 꾸물댄다. 작은 놈부터 아침을 먹고 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할 일도 별도로 없고 하여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어제 저녁 집사람에게 출장일정에 맞추어 짐을 챙겨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속옷가지 몇 벌이 차곡차곡 개져 있고, 나머지 잠바, 바지 등 겉옷은 알아서 입고 가라는 식으로 따로 장롱에서 꺼내져 있다. 이들을 담아 가지고 갈 가방도 이것저것 많이 놓여 있다. 당초 내 생각은 검사 출장 때 들고 다니던 서류용 가방에 속옷 몇 벌 넣어 가져갈 생각이었으나, 한편 생각을 해 보니 이곳 저곳 돌아다니려면 아무래도 간편하게 배낭을 메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우선 짐의 부피에 맞는 배낭을 찾다 보니 작은애가 고등학교 입학 때 학교에서 나누어 준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크기도 적당하고 색깔도 그런 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 놈으로 하기로 결정을 하고 짐을 챙긴다. 속옷 3벌, 양말 몇 켤레, 점퍼와 바지, 세면도구, 비상약, 손톱 깎기 등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다 챙긴 것 같다. 여행에는 원래 바늘과 실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원화 40,000원, 미화 700달러, 여권, 신용카드 2장을 준비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도 집사람에게는 부담되는 일이라 생각되어 예정시간보다 조금 일찍 14:10에 집을 나선다.
숭실대입구역까지 걸어 가 보기로 한다. 사실 이 곳으로 이사 온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집에서 버스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 곳을 차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지 아직까지 와 본 적이 없다. 시간도 넉넉하고 또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 알아도 볼 겸 걸었다. 정확히 10분이 걸린다. 그 곳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10분 걸려 고속 버스터미날역에서 하차하여 한참을 헤매다 인천공항 행 버스 타는 곳을 찾았다. 공항까지 버스표를 구입하려고 하니 안내 책자에 10,000으로 되어 있는 요금을 11,000원 내라고 한다. 처음부터 따지기가 뭐해서 그냥 돈을 주고 14:45발 버스에 몸을 싣는다.
3. 인천공항에서
예상보다 1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한다. 인천공항 개항이후 처음으로 와 본 공항은 규모가 종전의 국제공항으로 사용하던 김포공항보다는 확실히 다르다. 예전 김포공항에서 국제선을 이용할 때에는 check-in을 하고 입국심사를 받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이 곳은 check-in 카운터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어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탁송할 짐이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boarding 패스를 받고 출국세인가 무슨 기금인가 10,000원을 납부하고 입국 심사대로 간다. 이 곳 또한 마찬가지다. 별로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줄서 있는 사람 수가 적고 그 중에도 여자들이 없는 심사대를 선택하여 그 앞에 줄을 선다. 16:00경에 출국 심사대를 빠져나와 보세구역 이곳 저곳 구경을 한다. 물건을 살 의향도 없지만 별로 살 물건도 없다. 집에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려고 했으나 전화카드를 집에 빼 놓고 와서 할 수 가 없다. 전화기에 일반 신용카드로도 통화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시험적으로 카드를 삽입을 해 보았으니 전화가 되지 않는다. 다시 면세점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기는 한데 내게는 소용이 없는 물건으로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가 혹시 있나 해서 찾아보니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상표는 없다. 별로 다양한 종류의 상품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중에 뉴욕 공항이나 앵커리지 공항의 면세점을 둘러보았을 때 우리의 인천공항의 면세점 규모와 편리함이 훨씬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4th gate 앞에서 18:30경까지 TV 시청을 하다가 비행기에 오른다. 18:55에 gate가 close 되고 19:10에 비행기는 이륙을 한다.
4. 비행기 타고 가는 길
인천을 이륙한 비행기는 서울근처 상공을 지나 양양 상공을 통과한다. 아마 저 아래는 지난 토요일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으리라.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또 많은 피해를 당해 고통을 받고 있으리라.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고 세상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러한 의지와 힘을 한 순간에 몽땅 가져가 버렸을 것이다. 희망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낙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고뇌하는 모습이 머리에 직접 전달되는 느낌이다. 하기야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 하늘에 있는 그 님은(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하찮은 짓거리들에 대하여 노하고 다스리려 그렇게 하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가 동해로 빠져 나온다. 발아래 저 밑에 시퍼런 바다가 있고 그 가운데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 정확히 비행기는 두 섬의 상공을 지나 일본 쪽으로 동진을 계속한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 ― 일본, 한 번 가서 보고 온 곳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그 곳의 환경은 우리가 쪽바리라고 우겨대며 비하하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보다 한 수 위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유산을 갖고 있다고 본다. 니이가타 상공을 거쳐 비행기는 북북동진을 한다. 비행기는 고도 12km 이상 유지하면서 뒷바람(tail wind)의 영향으로 순간 속도가 1,000km/h를 웃돌 때도 있으나 평균 950 km/h를 유지한다.
비행기 안은 빈 좌석이 한 개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의 새학기가 시작되는 때이고 또 일본의 단체 관광객이 자리를 해서 그런지 좌석이 꽉 차 있다. 물론 비행기 회사 사장님이나 이해 관계자들은 좋겠지만, 승객 입장에서 보면 좌석이 만석이 된 경우에는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 그래도 옆 좌석이 비어야 발도 뻗을 수 있고, 또 구두를 벗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좌석은 만석이고 더욱이 Economic class이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기내식이 나온다. 생선과 쇠고기 두 가지 종류가 있단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국적기를 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내 경우엔 그 중 한가지는 식사 때 스튜어디스가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달라는 대로 음식을 주는데 있다. 생선이라고 말을 하자 달리 물어볼 말도 없는 지 얼른 한 판 꺼내 주고 앞으로 전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스튜어디스를 불러 세우고 더 줄 것이 없는지 알아본다. 포도주 병이 보인다. 포도주를 주문하면서 스튜어디스가 물어보기 전에 red라고 말해 버렸다. 물론 식사를 생선으로 주문했으니까 white 와인이 적격인지 모른다. 그러나 white wine은 red 보다 조금 더 떫은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 red로 주문했다. 언젠가 Swiss Air 항공기를 탔을 때에는 포도주를 작은 병으로 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알뜰해서 그런지 아님 못 사는 나라 비행기라서 그러는지 큰 병에 담긴 와인을 가지고 다니며 일일이 한 잔씩 따라주고 있다. 평소의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아님 처음 대하는 음식이라 그런지 별 거부감 없이 먹어 치운다. 솔직히 양이 조금 많기는 했지만, 남긴다는 것도 그렇고 해서 전부 비웠다. 그리고 포도주를 추가로 요구해서 더 마시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물도 마시고 나니 포만감에 잠이 슬슬 온다. 그런데 나중에 겪을 시차적응에 대비해 가급적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물론 별 효과 없이 중간에 잠들고 또 시차 때문에 고생도 했지만 말이다.
하늘에서 본 알라스카
비행기는 소련의 캄차카 반도 밑을 따라 계속 북동진 한다. 날이 밝아 온다. 서울시간으로 치면 아직 한 밤중이지만 날자 변경선을 지나 알라스카 근처에 이르렀나 보다. 비행기 아래는 온통 흰 눈으로 덮혀 있다. 소위 말로만 듣던 만년설이라는 것인가 보다. 하늘이 청명하고 산과 대지가 흰색으로 덮혀 있으니 그 광경을 상상해 보라.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저 마다 위용을 자랑하는 것 같으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나그네의 눈에는 그저 아름답고 신비하고 경이로울 뿐이다.
앵커리지 근처의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7시간여만인 현지시간 9:20(KST 새벽 2:20)에 알라스카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을 한다. 이곳에서 2시간 여를 쉬었다가 최종 목적지인 뉴욕으로 간단다. 예전에는 그저 이곳에 쉬었다 갔는데 작년 9.11 테러 이후에는 이곳에서 immigration 심사를 하고 또 세관심사는 최종 도착지 공항에서 한단다. 그러니까 이곳부터 뉴욕까지는 미국 국내선 개념을 도입한 것 같다.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선다. 한참을 서 있다 보니 주로 동양계 인들이다. korean, chinese, japanese 등 대부분 동양인들이다. 그리고 이 곳을 이용하는 항공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항공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물론 이른 새벽시간이라 그래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다른 나라 항공기들은 보이질 않고 있다. 공항내 안내문도 영어 아니면 중국어, 그리고 한글이 전부다. 하기야 이곳 극지방으로 입국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와 중국 사람 아니면 또 어느 나라 사람이 있겠느냐 마는 혹시 힘없는 나라 백성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월적 지위를 기정 사실화 해 주는 처사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줄 서 있기도 힘이 든다. 하기야 밤새도록 좁은 기내에 7시간 이상을 앉아서 왔으니 다리가 아플만도 하다. 입국 심사대의 심사관들은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만디로 일을 한다. 입국심사를 받던 사람 중에는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별도로 다른 창구로 가서 심사를 받기도 한다. 입국심사를 받을 사람들이 500여명이나 줄을 서 있는 데 심사대는 고작 3곳만을 만들어 놓았다. 그 것도 한 곳은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만을 위한 곳이고 나와 같은 외국인은 고작 2줄로 서서 심사를 기다린다. 내 차례다. 여자가 질문을 한다. 뭐 잘 못한 짓이 있을 리 없어 꺼릴 것은 없지만 신경이 써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간단히 아주 간단히 답한다. 여러 말하다 보면 어차피 짧은 영어에 공연히 꼬투리나 잡힐 것 같아 아주 기계적으로 yes 또는 no 라고 답변을 한다. 그리고 간단히 tour, about 6days 하니 스탬프를 찍고 B2라고 적어준다. Customer Area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앵커리지에서 내렸는지 20여 개 좌석이 비어 있다. 그 자리로 옮겨 앉아 좌석 두개를 차지하고 다리를 뻗어 본다. 한결 편안한 기분이다. 비행기는 11:40(현지시간) 다시 이륙을 하여 최종 목적지로 나르기 시작한다. 알라스카의 산봉우리와 태평양이 바로 눈 아래 펼쳐진다.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알라스카 만을 끼고 알라스카 대륙 위를 남쪽으로 날고 있다. 장관이다. 만년설,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얼음지대, 얼어붙은 바다, 아주 잔잔해 보이는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배의 흔적, 나무 한 그루 없어 보이는 시커먼 산들 .....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광경이다.
알라스카 만을 오른쪽으로 끼고 남진을 하던 비행기는 방향을 바꾸어 록키산맥을 가로질러 국경을 넘어 카나다 상공으로 들어가 계속 동진을 한다. 다시 기내식이 나온다. 이번에는 쇠고기를 주문하려고 했으나 메뉴가 닭고기와 생선뿐이란다. 닭고기로 주문을 했다. 식사후 한 숨을 잤다. 사실 이 곳 시간으로는 낮잠을 자는 것이지만 서울시간으로는 새벽잠을 자는 것이니 아주 단 잠이다. 깨어 보니 오대호 상공을 동진하고 있다. 다시 해가 져서 사위는 어두워 졌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행기 항로는 동남진을 계속하다가 오대호를 지나 남진을 하기 시작하여 뉴욕공항근처에서는 다시 동진을 하고 뉴욕시내의 불빛이 보이자 비행기는 대서양으로 빠져 나와 북서쪽으로 기수를 돌리더니 J.F.K 공항에 21:55 착륙을 한다. 입국 심사는 앵커리지 공항에서 이미 마쳤기 때문에 간단히 세관심사를 하고 공항을 빠져 나온다. 비행기가 뒷바람을 안고 왔기 때문에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을 했고, 뉴욕공항에서 입국심사 없이 간단히 입국장을 빠져 나왔기 때문에 마중 나오기로 한 우리 회사 뉴욕사무소 직원의 얼굴이 보이질 않는다. 픽업하러 나오지 않았으면 어떠랴? 사실 이렇게 늦은 시간 마중을 나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아직 집에서 출발을 하지 않았으면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 본다. 동전 교환 창구에서 1달러 지폐를 25센트 짜리 2개, 10센트 짜리 동전 5개로 바꾸어 공중전화기에 넣고 전화를 해 보니 되질 않는다. 얼마를 넣어야 되는 지 알 수 없어 서울에서처럼 동전 전부를 넣고 번호를 눌러 본다. 되질 않아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동전이 반환되질 않고 기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동전 바꾸는 곳으로 다시 가서 이야기를 하고 동전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전화를 할 수 있는 지 물어 보니 뭐라고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알아먹을 수가 없다. 하여 다시 시도는 해 보는데 통화가 되질 않는다. 아까운 동전만 2달러 내버리고 승객들이 나오는 출구로 가 보니 사무소 직원이 둘이나 나와 있다. 그들에게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또 늦은 밤 마중 나오게 한 것이 부담도 되어 전화 걸다 실패한 일을 크게 떠버려 본다. 그들도 미안해한다. 원래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추어 다른 때보다는 조금 일찍 공항에 나왔단다. 그런데 그들은 입국 심사를 앵커리지 공항에서 하는 사실을 몰랐고, 또 내가 짐을 많이 가지고 와 짐 찾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을 계산하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일찍 나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이 더 미안해한다. 아무튼 그들의 안내로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예약된 호텔에서 check in을 할 수 있었다.
5. 호텔에서 1박
Stanford Hotel, 미국 뉴욕시 43W 32St 소재, 호텔 주변에는 한빛아메리카 은행이 있고, 강서회관, 감미옥 등 11개 한국식 음식점, 여행사, 백화점, 약국, 잡화점, 분식점 등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와 한국인 사무실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다. 물론 이 호텔도 한국인이 운영을 한단다. 체크 인을 하는데 우리말을 하는 여자 쪽으로 가서 체크인을 한다. 물론 옆에 외국인이 있기는 하지만 외국인보다는 한국인 쪽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은.... 1일 숙박비 119불, 여기에 봉사료와 2가지 tax가 붙는다. state tax, city tax, 또 무슨 등등하여 하루에 137달러를 주면 아침에 빵으로 된 식사까지 제공하는 뉴욕에서는 비싸지도 그렇다고 아주 싸지도 않는 호텔이란다. 이곳 11층 2호 그러니까 1102호에 여장을 푼다.
호텔 영수증
일단 호텔에 체크인은 하였으나 밤과 낮이 완전히 뒤바뀐(뉴욕은 서울과 13시간 시차가 있음) 관계로 잠을 잘 수가 없어 다시 밖으로 나와 본다. 어디 시내 야경이라도 구경할 생각이지만 처음 도착한 곳이라 지리도 모르겠고 또 험한 세상 무슨 불상사를 염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라 멀리는 가지 못하고 호텔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공중 전화 카드를 사서 서울에 도착하였다고 전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전화사용법을 잘 몰라 애매하게 통화요금만 카드에서 빠져나가고 집에는 통화가 되질 않는다. 잠깐 호텔 주위를 배회하다가 잠자리에 든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깐 잠들었다가 눈이 떠진다. 3시에 잠에서 깨어 몇 번을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5시 10분에 일어나 볼 일을 보고 나도 30분도 지나지 안았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집에 전화를 한다.
32nd st.를 중심으로 Korea way가 있다. korea way는 31st 쯤에서 시작하여 3십 몇 번 가까지라고 하는데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 하였다. 물론 호텔도 32nd st에 자리하고 있고, 한국인 음식점, 잡화점, 미용실 등이 있는데 거의가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참 부지런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 고국에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저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호텔을 나와 처음에 3블럭을 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3블럭을 가고 또 다시 오른쪽으로 6블록을 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3블럭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 아직 먼동이 트지 아니한 길거리는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악취가 난다. 우선 길거리에 쓰레기가 너무나 많이 놓여져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쓰레기 뿐 아니라 음식물 찌꺼기까지 길거리에 지저분하게 놓여져 있다. 봉투에 담은 것, 길거리에 그냥 버려져 있는 것...... 정말 지저분하다. 어두컴컴한 거리에는 homeless로 보이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지나가는 나를 흘끔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색이 이상하다. 얼굴에 무슨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 같다. 가슴이 섬짓하다. 하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다. 겉으로는 당당하게 그들 옆을 지나 쳤지만 속으로는 두려움에 가슴이 움츠려 진다. 그런데 그들도 나를 피해 옆으로 움직인다. 서로가 낯 설은 자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가 보다. 하기야 그들도 피부색 다른 동양인이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람의 심리일지도 모른다. 조금 있으니 청소차가 지나간다. 청소차의 생김새는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우리 것보다 조금 크고 또 탱크에 모아놓은 쓰레기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 봉투에 담아 놓여 있는 것을 사람이 하나씩 일일이 차에 싣고 있다. 그런데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백인들이다. 이곳 뉴욕은 백인이 천대시 하는 흑인, 라틴계 및 아시아계 등 유색인종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백인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또 이렇게 쓰레기 봉투를 치우고 지나간 자리를 브러시를 단 청소차가 물 청소를 하면서 지나간다. 그러니까 밤새 어지럽혀 놓은 거리를 아침에 청소를 하여 낮에는 깨끗하게 보인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원래 미국이라는 나라가 누가 무엇을 하던지 또는 남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면 된단다. 그리고 청소부는 공무원 신분으로 이곳에서는 대우가 상당히 좋다고 한다. 청소부를 모집할 때면 보통 몇 십 대 일의 경쟁률이고 학력도 높단다. 청소부가 되면 공무원으로서 누리는 각종 혜택 ― 주 정부, 연방정부의 혜택뿐만 아니라 연봉도 처음에 20,000불 정도를 받고 계속 4년 정도를 근무하면 상당히 많은 고액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고학력의 백인들이 청소부로 많이 근무하는 것은 당연한 미국인의 사고방식에 따른 것일 게다.
□ 9. 3 화요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맑음
7:30에 아침식사로 호텔에 딸린 술 파는 bar에서 빵을 먹었다. 원래 호텔 숙박비에 조식비가 포함되어 있기에 별도로 돈을 들여 아침 식사를 하느니 빵으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제부터 기내식에 이어 아침까지 빵을 먹으니 속이 더부룩한 것이 편하지 않다. 원래 우유는 먹지 못하고 해서 �톤 홍차에 토스트 2 조각, 빵 2개를 먹고 또 토마토 주스 1/2컵, 그리고 커피 반잔까지 마셨으니 엄청난 양이다. 당연히 속이 안 좋을 수밖에.... 결국 뉴욕시내 관광 중에 부득불 화장실을 찾아 볼 일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 머무를 동안 내내 발생했으니 정말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6. 뉴욕 시티 관광
서울을 출발하기 전에 뉴욕사무소 직원을 통하여 city tour를 예약했었다. 하루에 중식 제공받고 70달러, 그리고 10달러를 tip으로 지불하기로 했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예약된 장소(한빛 아메리카 은행)에 9:40경에 나가 보니 우리가 예약하지 아니한 관광회사 버스가 와 있다. 몇 명의 사람이 승차해 있고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찾고 있다. 모르는 척하고 투어 비용이 얼마냐고 문의를 한다. 원래는 70달러인데 60달러만 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차를 이용할까 생각하고 있는 데 우리가 예약한 회사(동부관광) 버스가 온다. 가이드가 차에서 내려 연신 사람들을 찾고 있다. 두 회사가 경쟁관계에 있는지 가이드들의 부지런함이 대단하다. 먼저 온 관광버스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예약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하고 1일 투어를 하려고 하는데 60달러만 하자고 하니 군말 없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 잠깐 사이에 10달러를 번 셈이다. 버스에 승차를 하고 출발 예정시간인 10시가 넘었는데 차가 출발을 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가이드가 하는 말이 저쪽 버스가 출발해야 이 버스도 출발한단다. 차안에 있는 사람들이 출발하자고 독촉을 하자 “저쪽 버스와 동시에 출발하자” 고 제의를 하고 저쪽 버스와 동시에 출발할 예정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곳에는 여행사들이 많은데 서로가 경쟁이 심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단다. 한국에서도 서로 치고 받고 하면서 경쟁을 하더니 해외에 나와서 까지 그 버릇 남 못 주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두 버스가 동시에 출발을 한다. 우리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서 14명의 관광객이 타고 떠난다.
차는 broad way를 거쳐 5th Ave를 따라 맨하탄 섬 남쪽으로 이동을 한다. 브로드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길모퉁이에 곡선으로 생긴 상당히 높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맨허탄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사각형 모양이다. 그러나 이 Plat Iron Building은 예외로 사각형이 아니고 곡선으로 되어 있는 데, 원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건축되기 전까지는 뉴욕 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신축되고 나서는 2번째로 높은 빌딩이 되었는데, World Trade Center Building 이 신축되면서 3번째 높은 건물이 되었으나 작년에 세계무역센타 건물이 무너지면서 현재는 다시 뉴욕에서 2번째로 높은 빌딩이 되었단다. New York 대학, SOHO거리, 차이나타운 등을 차안에서 가이드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대로 고개를 돌려가면서 보고 지나쳐 버린다. 이런 여행은 정말 싫다. 시간이 된다면 내려서 걷고 보고 거기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단체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세계무역센타 건물이 있던 자리는 무너진 건물 잔재는 다 치워지고 대형 성조기만이 걸려 있다. 그 날의 무엇을 느끼려고 하는 지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보러 온단다. 마침 며칠 더 있으면 그 사건이 있는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라 이곳 뉴욕시내 여기저기에 테러를 상기하자는 글귀 담긴 플랭카드가 내걸려 있다. 하기야 그 당시 무너진 건물의 층수만 따져도 엄청나단다. 110층 짜리 쌍둥이 빌딩에, 그 주변에 있던 50층 짜리 건물 3개가 무너졌으니 무너진 건물의 총 층수는 모두 370층이나 된단다.
월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황소상 앞에서
Wall Street를 지나 Castle Clinton 입구 공원 앞에 차가 도착한다. 옛날 Clinton이라는 장군이 바다가로 쑥 들어간 지점에 돈대를 쌓고 지키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개펄을 매립하여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 놓았다. 이곳에서 ferry를 타고 섬 남쪽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그런데 배 시간을 알아보고 온 가이드 말이 아직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부지런히 카메라 둘러메고 공원을 빠져 나와 아까 지나친 월가를 찾는다.
공원에서 한 15분 거리에 있고, 월가 입구에는 황소 상(증권시장이 황소처럼 일어나라는 뜻에서 이런 상을 만들어 놓는다고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어떤 증권회사의 심볼이 황소인 것으로 안다)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월가 골목을 들어선다. 월가 골목은 공사중이고 차량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NYSE, FRB 건물, 연방기념관 등을 보고 다시 ferry 타는 곳으로 온다. 12:15 페리에 승선하고 보트 관광을 시작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기도 시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배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Miss Liberty and Ellis 호, 승선인원은 우리 일행 외에 외국인 서너 명이 더 있다.
자유의 여신상 Brooklyn Bridge
3번 pier에서 출발하는 우리가 탄 이 배의 코스와 5번 pier에서 출발하여 자유의 여신상 및 엘리스 섬을 왕복하는 코스 등 2개의 선상관광 코스가 있는 데 5번 부두에서 출발하는 배에는 사람이 많이 탔다. 그리고 출항하는 배의 간격도 한 20분 정도인데 우리가 탄 배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선상의 현지 안내인은 열심히 영어로 뭐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3번 pier를 떠난 배는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 오른쪽으로 맨하턴을 보면서 무너진 세계무역센타 건물을 조금 지나자 서서히 뉴저지주 쪽으로 선회를 하여 다시 강 하류방향으로 내려간다.
엘리스 섬을 지나 Statue of Liberty 근처까지 가더니 다시 선수를 좌로 돌려 이번에는 East River를 거슬러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그 유명하다는 Watch Tower가 있고 앞에는 Brooklyn Bridge가 보인다. 이 다리가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현수교란다. East River에는 이와 비슷한 모양의 다리가 3개 정도 더 있어 맨하탄 섬과 Queens, Bronx, Brooklyn 와 연결하고 있다. 브루크린 다리를 조금 못 가 다시 좌로 180도 선회를 한 배는 17번 pier(우리의 수산시장 쯤 된단다)앞을 거쳐 원래 출발한 장소로 되돌아 나온다.
늦은 점심시간 다시 31번가로 나와 한식당에서 뷔페로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먹은 빵으로 인해 속이 별로 좋지 않아 조심해서 아주 조금만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는 Empire State Building엘 갔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체 1분도 안 걸려 80층까지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바꿔 타고 86층에 내린다. 한 동안은 102층 전망대까지 올라갔다고 하는데 작년 9.11테러 사태 이후는 월드무역센타에 있던 각종 통신시설이 파괴되면서 이 곳 102층에 통신시설을 하는 바람에 86층 전망대만을 운영한다고 한다. 어제 밤늦게 도착해 맨하턴 시내 전체를 관망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 곳 전망대에 올라 보니 맨하턴 시내 전체를 볼 수 있다. 우선 출구를 나가니 북동쪽의 UN Town을 비롯해 East River 건너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Central Park을 비롯해 멀리 할렘가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바로 밑에 통일교에서 구입하였다는 New Yorke 건물과 Madison Square Garden 빌딩이 반쯤 보이고 저 멀리 Hudson 강을 건너 뉴저지주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우리가 아침나절에 버스를 타고 돌아다닌 거리와 건물들이 보이고 더 멀리에는 배를 타고 돌아보았던 자유의 여신상, 엘리스 섬 등이 보인다. 사진 몇 장 찍고 건물을 나와 북쪽에 있는 할렘가를 버스를 타고 그냥 외곽만 구경하면서 지나친다. 그 곳에도 많은 한인들이 있는 것 같다. 한글이 보이고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가게에 있거나 가게를 새로 내려고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다음에 들른 곳이 성 요한 대성당이다. 공식적인 입장료는 없는 데 기부형식으로 2달러 정도를 내고 들어간단다.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성당을 신축중인데 1892.12.27 착공하여 2,050년에 완공예정이란다. 입구에 보니 우리 한국전에 참전한 기념물이 있고 이 성당에서 한국전 때 많은 구호활동을 하였단다. 신축자금에 2달러 정도 보태는 것에 대하여 아깝다는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버스는 Central Park를 지난다. 세로가 4Km, 가로가 약 800m란다. 숲이 없는 맨하탄에서 유일하게 있는 나무숲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원 우측으로 여러 개의 박물관들이 늘어 서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내일 시간을 내어 이중 한 곳 박물관을 보려고 생각을 해본다.(그러나 다음날은 하도 피곤하고 시차적응이 되질 않아 호텔에서 잠자는 것으로 저녁나절을 보냈다). 퇴근시간 traffic에 걸려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은 18:10 경에 버스는 아침에 출발한 장소에 우리를 내려놓고 떠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본 남쪽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본 서쪽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본 북쪽
(가운데 나무 있는 곳이 센트럴 파크)
오늘은 하루 종일 버스만 타고 뉴욕시내를 배회하다 돌아온 느낌이다. 무엇을 많이 본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다. 저녁에 뉴욕사무소 직원들이 저녁을 사 준다고 호텔로 왔다. 비록 하루지만 피부색 다른 사람들 속을 다니다가 같은 피부색 더욱이 잘 아는 사람들을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만난다는 것은 반갑기 그지없다. 저녁으로 주물럭과 새우구이를 시켜 양주를 반주로 먹는다. 하지만 밥 먹는 것도 너무 피곤하다. 생체리듬이 깨져서 그런지 얼른 먹고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뉴욕에서의 술 한잔 제의도 거절하고 일찍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 9.4(화) 맑음
뉴욕사무소에 업무처리를 위하여 방문한다. 택시를 타고 갈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시간도 넉넉하고 지리도 파악할 겸 걸어서 가기로 한다. 지도 한 장, 그리고 뉴욕사무소 주소(780 14th floor, 3rd Ave.)만 달랑 들고 걷기 시작한다. 호텔이 43W 32nd St. 이니까 오른쪽으로 몇 개의 avenue(지도상으로 보면 5th, Madison, Park Lexington, 4th, 3th Ave.)를 차례로 지나고, 계속 북쪽으로 가다보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른쪽으로 가다가 바둑판의 사다리 모양으로 걸어간다. Ave 쪽(오른쪽)으로 가다가 북쪽으로 가고 또 오른쪽으로 가고 다시 북쪽으로 가고...... 호텔을 떠난 지 30분만에 사무소 건물에 도착하여 사무소에서 볼 일을 마친다. 뉴욕에 사는 친구와 약속한 점심을 먹기 위하여 다시 호텔근처의 식당으로 돌아올 때에는 지하철을 타 보기로 한다. 뉴욕의 지하철은 건설한지 100년이 넘었다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지저분하고 철로에 물이 흐르고 역구내가 무덥지만 타보니 그런 대로 쓸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자가 나무로 되어 있는데 일부 의자는 ㄱ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화하기는 편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차내가 깨끗하고 겉보기와는 다르다. 한 가지 특징은 우리나라 지하철은 노선별로 별도의 철로를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뉴욕의 것은 같은 철로를 여러 방면의 지하철이 다닌다는 것이다. 우리 기차 길과 같은 원리다. 영등포역에 나가보면 인천, 수원, 부산, 대구, 목포 등 여러 방향으로 가는 기차가 지나다니듯이 이곳 지하철은 같은 역에 정차하는 지하철 노선이 여러 개 있을 수 있다.
늦은 점심을 횟집에서 백세주를 반주로 하여 생선회와 매운탕으로 해결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3시가 넘어 미국의 백화점 구경에 나선다. 브로드웨이와 7th Ave. 사이에 있는 Macy’s 백화점을 1층에서부터 7층까지 다니면서 이것저것 보았으나 서울의 백화점보다 초라하기 이를 때 없다. 면적은 서울의 그 것보다 월등히 크나 진열된 상품이나 고객의 수에 있어서는 서울의 그 것을 따라가기 힘들 것 같다. 하도 피곤하여 16:00 조금 넘어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가 그냥 잠이 들어 저녁도 먹지 못하고 다음날 03시에 잠이 깨었다.
7. 뉴욕은
뉴욕주는 미국의 50개 주 중의 하나로 그 크기가 우리나라보다 더 크다고 하며 남쪽으로 대서양에 접한 뉴욕 시에서 북쪽으로는 캐나다 국경 (나이아가라 폭포도 포함됨) 까지 이르고 있단다. 우리가 흔히 뉴욕이라고 하면 뉴욕 city를 말하며 좁게는 Manhattan을 지칭한다. 나는 이번 여행 전에는 뉴욕하면 곧 뉴욕 시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뉴욕 시는 뉴욕주 남부에 붙어 있는 한 도시에 불과하며 New york city와 State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 목적지를 뉴욕이라고 하였지만 실지로는 뉴욕시티 그 것도 Manhattan 만을 다녀온 것이다. 뉴욕주는 그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휴게소에 들른 것이 고작이다.
뉴욕 시는 Manhattan, Queens, Brooklyn, Bronx, Staten Island 등 다섯 개 Borough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Manhattan은 상업의 중심지 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주로 이곳에 있는 호텔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 졌으며, 이 글 또한 이곳을 중심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다.
맨허탄은 섬이다. 동쪽으로는 East River, 서쪽에는 Hudson River 그리고 이 두 강은 섬 남쪽에서 만나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두 강이 만나는 곳이 뉴욕 만인데 이곳에 책에서 보았던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맨하탄 섬을 세로로 나눈 도로(남북을 관통하는 도로)를 Avenue, 가로로 나눈 도로(동서를 관통하는 도로)를 Street라 한다. 그리고 Ave.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각각 1st. 2nd, 3rd, Lexington, Park, Madison, 5th, 6th, 7th, 8th, 9th, 10th, 11th, 12th Ave.가 있으며, 이들 도로는 전부 섬을 남북으로 곧게 가로지른다. 이중 5th Ave.를 중심으로 동쪽을 East, 서쪽을 West라 부른다. 우리가 묵은 호텔의 주소가 43W로 되어 있는 데 이는 5th Ave. 중심으로 서쪽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6th 도로를 Ave. of the Americas라 한다. 그리고 남북을 관통하는 또 다른 도로가 있는데 이를 Broad Way라하고 이 도로는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 중 유일하게 구부러진 도로다. Street는 섬을 동에서 서(서에서 동으로)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st.에 번호를 붙이는데 남에서 북으로 가면서 숫자를 크게 하고 있다. 물론 1번가가 섬의 제일 남쪽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섬의 Greenwich Village부터 시작되는 것 같은데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그 근처에서 한 자리 수의 st. 표시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가면서 1백 몇 십 st. 까지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번지수는 Ave.에서는 남에서 북으로 갈수록 커지고, St.에서는 5th Ave.를 기준으로 좌우로 갈수록(멀어질 수록) 큰 번지수다. 그리고 섬을 Midtown, Upper Side 등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동서를 기준으로 Midtown East, Midtown West, Upper East Side, Upper West Side으로 나누고 있다. 따라서 뉴욕에서는 집 찾기가 아주 쉽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회사 뉴욕사무소를 주소만 가지고 걸어서 찾아갔을 때 별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다. 뉴욕의 건물과 건물사이는 막혀 있어 골목이 없다. 그러니까 건물이 잇대어 있다는 의미로 소위 나대지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Ave.나 St.나 한 쪽은 짝수 번지가 다른 한 쪽은 홀수 번지가 되니 찾기가 아주 쉽다. 예를 들어 내가 묵었던 호텔의 주소는 43W 32nd 인데 이는 32번가(st)에서 5th Ave.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43번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회사 뉴욕사무소의 주소는 780 Third Avenue (14th floor)인데 이는 3번 Ave. 780번지에 있는 건물 14층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섬 오른쪽으로부터 남북으로 3번째 있는 도로 가에 780번지(이 번지수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점점 커지니까 대충 위치를 알 수 있다)에 있는 건물만 찾으면 된다. 한 번지에는 건물이 하나밖에 없으며 번지를 나타내는 숫자는 바로 건물 전면에 붙여져 있고, 길 한쪽은 짝수건물, 다른 한쪽은 홀수건물이 있으니 찾기가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우스개 말로 뉴욕에서는 약속장소를 정하고 만나지 못하면 바보라고 한다니 그럴 만도 하다.
뉴욕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거리로 나왔을 때 지저분하고 더러운 도로환경과 텅 빈 것 같은 쓸쓸함에 실망을 했었다. 그러나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 시간에 맞추어 다시 한번 호텔주위를 산책하려다 보니 건물 귀퉁이 지하 구멍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나왔다. 하도 신기해 가까이 가서 보니 R, Q, N등의 문자가 있는 구멍으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구멍이 바로 지하철과 연결된 출입구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하철 표시가 있는 커다란 출구가 길거리에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데 뉴욕의 경우에는 여러 건물 귀퉁이에 조그맣게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하여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이다. 실제로 지하철을 타 보았을 때 구멍 찾아 들어가 안내판을 따라가 보니 역이 나오고, 또 전철에서 내려 자기가 원하는 지역의 출구를 찾아 나오면 되었다. 하기야 많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 서 있는 맨하탄 시에 별도로 커다랗게 지하철 표시를 해 가면서 까지 역 주위에만 출입구를 만들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이 든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모든 거리가 식별이 편리하게 Ave. 와 St.로 구분되다 보니 지하철을 타고 내려 서 가려는 목적지를 따라 출구 방향을 찾으면 되니 합리적이기도 하다.
미국사람들은 잡동사니다. 원주민은 보지 못했고, 백인, 흑인, 라틴계, 아시아 황색인 등등..... 그 중에도 흑인이 월등히 많은 것 같다. 아침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부가 꺼멓고 조금은 황색이고 백인은 몇 % 되지 않는 것 같다. 흑인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 까맣다. 한국에서도 어쩌다 이러한 흑인을 본적은 있지만 여기선 이러한 흑인이 많고 또 그들 옆을 지나치려다 보면 그들에게서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아침 출근시간에 지하철 출구를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결같이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아래 위 검은 색에 피부색까지 검으니 도시 전체가 검게 보이기까지 한다.
뉴욕 시내 중심부 건물은 시멘트 건물이지만 북쪽의 주택들은 벽돌로 지어져 있다. 뉴욕시내 중심 가에는 가로수가 없다. 높은 빌딩으로 둘러 쌓여 있으니 가로수를 심는다 해도 해 빛이 들지 않아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간혹 가다가 가로수가 있기도 한데 전부가 사시나무 종류의 나무로 보이고 굵기와 크기도 별로 크지 않는 조그마한 나무들이다. 물론 북쪽 할렘가를 지나다 보니 주택가에 나무가 있기도 하였으나 중심 가에서는 가로수를 볼 수가 없다.
뉴욕시내에는 지하철망이 잘 발달되어 있단다. 지하철이 건설된 지 100년이 넘었으니 그 시설은 낡고 지저분하지만, 편리성은 대단한 것 같다. 시내버스는 타보지 못했지만 서울의 그 것과는 달리 외관이 매우 깨끗해 보였다. 주로 동서를 운행하는데(왜냐 하면 맨하탄은 집세가 비싸 사람들이 주로 New Jersey 또는 롱아일랜드 주에 살면서 출퇴근은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버스 안에 서 있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택시는 이엘로우 캡이라고 하는 데, 이 또한 타보질 못해 할 말이 없다. 한편 우리 한국인들이 콜택시를 많이 운영하고 있는 데 주로 한인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것 같았다. 나도 맨하탄에서 공항으로 올 때 한 번 타 보았는데 이놈들 요금을 제 멋대로 받았다. 얼마를 부르더니 거기에 톨 비와 팁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원래는 맨하턴 미드타운에서 J.F.K 공항까지는 요금이 $40 정도인데 여기에 톨 비 그리고 팁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모두 합쳐 45불에 콜택시를 이용했다. 어디까지나 미국은 자유경쟁 사회이니까 뭐든지 흥정을 해서 가격을 결정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이 말은 여행 시 여행가이드에게서 들은 말이다. 미국은 경쟁사회고 따라서 같은 물건이라도 같은 값에 파는 곳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값에 살수도 없다. 실제로 여행 중에 보았는데 뉴욕에선 담배 한 갑에 7.5달러했는데 버지니아 주에서는 2.5달러, 그리고 펜실바니아 주에선 3.4달러 정도 하였다.
음식값 17불에 팁 2불인 영수증
팁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이라는 동네가 팁 문화가 발달된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같이 이에 익숙하지 않은 백성은 헷갈려서 힘들었다. 예를 들면 음식을 먹으면 세금뿐만 아니라 꼭 팁을 주어야 하는 데, 보통 물건값에 10~15%를 팁으로 줘야 되고 이 팁은 종업원들의 주 수입원이 된단다. 그러니까 사장은 종업원의 월급을 아주 적게 주는 대신 손님들로부터 팁을 받아 보충하라고 하는 심보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헷갈리고 혼란스럽게 한 것이 밥 먹고 나올 때마다 1달러 짜리 지폐를 식탁 위에 놓고 나와야 하는 것이었는데 한 번은 1달러 짜리 지폐가 없어 남한테 꾸어 사용한 적도 있었다.
뉴욕의 대학은 철조망이나 담장이 없다. 도심 속의 대학인 뉴욕대(NYU:물론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간 것이 전부지만)를 포함하여 몇 개의 대학을 스쳐 지나갔는데 모두가 담장이나 철조망을 보지 못 하였다. 뉴욕대의 경우 수많은 건물들은 보라색 바탕에 흰색 횃불이 들어간 깃발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유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통일된 켐퍼스를 유지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한 상징물로 일체감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미국에는 미제 물건이 없다. Macy's 백화점 이곳 저곳을 둘러보아도 여러 가지 유명상표의 옷을 팔고 있지만 정작 made in usa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전부가 china, 페루, 필리핀, 멕시코 등등.... 정작 미국 본토에서 만들어진 옷은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코닝사라고 유리 잘 만들기로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회사 박물관 겸 판매장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기념품이라도 살까하고 살피다가 찻잔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 유리제품이 있어 사려고 살펴보니 그 역시 made in china로 되어 있어 사기를 포기하였다.
나는 종종 스포츠 팀이 우리나라에 오거나 국가대표 축구팀이 해외 원정을 가는 경우에 시차적응에 실패하여 경기를 잘 못하였다고 하는 신문기사를 읽을 때 별 쓸데없는 것을 핑계로 내세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렇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뉴욕 시간은 지금 summer time 제를 하고 있어 우리 한국과는 13시간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뉴욕이 서울보다 13시간 늦게 가니까 밤과 낮이 정반대로 바뀌는 셈이다. 뉴욕에 도착한 시간이 그 곳 시간으로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고 호텔에는 도착하여 밤 12시가 넘어 잠을 청해도 잠이 잘 오지 않았을 때 처음에는 비행기내에서 잠을 자서 그러려니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낮 동안 활동을 하다보니 오후 3시가 넘어 가니까 정말 활동하기가 힘들었다. 우선 걷기가 싫었고, 생각하기도 짜증이 난다는 사실이다. 도착 다음 다음날 박물관을 가려던 계획도 하도 힘이 들어 몸이 말을 듣지 않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 시차문제는 신체의 생리적인 현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우선 내 경우 잠을 자면서 평소에는 소변을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곳 뉴욕에선 잠자다가 소변이 마려운 생리적 현상 때문에 잠에서 깨어야만 했다. 그리고 평소 아침에 일어나면 꼭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나는 일어나면서 화장실에 다녀왔는 데도 저녁 시간만 되면 꼭 생리적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지난 80년대 초 내가 한국은행 목포지점에 근무할 때 목포시에 바닷물이 역류하여 큰물이 진 적이 있는 데, 이유중의 하나가 영산강에 하구둑을 막았기 때문이란다. 영산강하구로 밀려오는 바닷물의 양은 둑을 막기 전이나 막은 후나 일정한데 둑을 막음으로써 강 상류까지 물이 밀려 올라가지 못하니까 그 물이 목포시내로 넘쳐 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밀려오는 바닷물은 약 2년이 지나야 줄어든다는 것을 그 당시 들어서 알고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수십 년 생활화된 생리적 현상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으니 관성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맨하탄은 그야 말로 인종 백화점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백인, 흑인, 황색인종 등등, 특히 흑인이 많은 데 이는 미국에서 비교적 자유로는 대도시로 흑인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뉴욕 근처에는 동양계 인들도 상당히 많이 살고 있는데 특히 중국인은 100만명이 넘고, 그 다음이 필리핀 사람이란다. 우리 한국인은 맨하탄과 뉴저지주 등 인근에 40여만명이 살고 있으며, 미국 서부에 100만명 기타 지역을 합치면 200여만명의 동포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단다. 맨하탄 지역에 이렇게 원래의 미국인들보다는 외부 민족들이 많이 살다보니 질서 의식도 그야말로 각 나라의 수준을 그대로 갔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면 신호등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그저 편리하게 갈 수 있으면 가고 갈 수 없으면 가지 않는 그런 형편이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Walk, 와 don't walk 두 가지 사인이 나오는데 don't walk에도 그저 차가 안 오면 건너간다. 그러니까 나 같은 초보자가 질서를 지킨답시고 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그 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는 길거리에 쓰레기가 많아 지저분했다는 부문도 이러한 인종구성과 질서의식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인의 거주형태도 재미있어 보인다. 보통 우리가 사람 사는 집을 영어로 House라 하던가. 그리고 우리 서울에서는 아파트가 인기가 좋아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콘도는 휴가철 별장정도로 이해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보통의 house 소위 단독 주택을 제외한 공동주택의 개념으로 condominium, co-op, apartment 등 3종류의 house 가 있단다. 그 중에서 우리가 제일로 치는 아파트는 미국에서는 임대주택 쯤에 해당되는 것으로 rent 용 주택으로 주로 서민들이 세를 주고 사는 집이다. 그리고 co-op 이나 condo.는 사고 팔 수 있는 즉 소유 개념으로서의 집이란다. 그러니 우리가 apartment를 너무 좋게 여겨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아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9.5(목) 맑음
8. 워싱턴 가는 길
― 1,250마일(2,000여 Km) 강행군 여행의 시작
오늘은 2박 3일 동안 워싱턴 D.C와 룰레이 동굴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을 시작하기로 한 날이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 제공은 7:30부터 하고 또 계속 빵으로 식사를 한 것이 위에 부담이 되는지 속이 좋지 않아 아침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배회하였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호텔로 와 호텔 옆에 있는 감미옥이라는 곳에서 설농탕을 시켜 먹었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7:15에 한빛 아메리카 은행 앞에서 25인승 버스에 승차를 한다. 맨하탄을 출발한 버스는 MIDTOWN 터널를 통과해 New Jersey 주에 이르러 turn pike를 질주한다. 평일 출근시간이라서 그런지 맨하탄으로 들어오는 길은 몇 Km나 버스, 승용차로 꽉 차 있다. 여기도 러시아워 트래픽은 대단한 것 같다. 물론 이곳도 버스 전용차로가 있는 것 같다. 덩치 큰 버스만 나란히 서있는 줄이 있고, 나머지 줄에는 승용차들이 꽁무니를 이어 서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우리 차는 걸릴 것 없이 잘 달린다. 신기한 것은 터널 통과비를 시내로 들어오는 차는 내는데 반대로 뉴저지주로 가는 차는 내지 않는단다. 한참을 가니 좌측 강가에 Samsung, Daewoo 등 낯익은 간판이 보인다. 이국 땅에서 보는 우리의 낯익은 상표와 공장건물은 나그네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있게 해준다. 한참을 달려 Fort Lee에 있는 우리은행 포트리지점 앞에 차가 정차하고 얼마를 기다리니 일 가족 6명이 승차를 한다. 그런데 Lee라 하여 우리나라 성 “이”씨가 연상된다. 혹 여기가 이씨들이 많이 살아 “이씨 요새”라고 불리는 것은 아닌 지 혼자 생각을 해 본다. 또는 어떤 Lee라는 장군이 이곳에 요새를 만들고 주둔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한국의 이장군? 하지만 아닐 것이다. 우연하게 Lee라는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의 요새였겠지.... 버스는 골목골목을 돌아 다시 고속도로로 나선다. 아까 지나친 대우, 삼성 공장이 있는 강가를 지나 한아름 수퍼마켓 앞에 정차를 하고 3명을 더 태운 버스는 좀더 가다가 Holiday Inn 에 이르러 그 곳에 묵고 있던 관광객을 태운 후 다시 돌아 나와 아까 그 삼성, 대우 공장 앞을 지나 워싱턴을 향해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뉴저지주는 맨하턴 서쪽 허드슨강 건너에 위치하는데 맨하탄은 집세가 비싸서 대개의 사람들이 맨하탄 시내에 살지 못 하고 이곳에 집을 얻어 사는데 특히 한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것 같다. 골목 이곳 저곳에 한글 간판이 있고,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대, 세탁소, 미장원 등의 간판들이 많이 보인다.
뉴저지주를 가로질러 워싱턴에 이르는 고속도로는 한 마디로 숲 속을 달린다고 하겠다. 산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 아니다. 사실은 모두가 산인데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산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숲으로 쌓인 고속도로는 가도 가도 평지 위를 달릴 뿐이다. 언덕이 없고, 바위가 없고, 절개지가 없다. 내가 미국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미국에는 도로 공사를 어떻게 했는지 절개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공사를 한 지 오래 되어 절개지에 나무가 자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원천적으로 평지에 도로를 만들었으니 언덕배기를 잘라 길을 만들 때 생기는 절개지는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고속 도로가 상하행선 둘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좁은 세멘트 구조물이나 철판으로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대개는 상하행선이 따로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두 선이 같이 있는 경우에도 두 선 사이에 충분한 녹지(주로 잔디로 조성된 길, 우리나라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일산을 지난 곳에 이와 비슷한 길을 볼 수 있다)를 확보하여 야간에 상대편 차량 불빛으로 인한 운전 방해 같은 것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중앙선 침범 충돌사고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커다란 땅 덩어리란다. 하기야 미국에 있는 땅에 전부 농사를 지으면 세계 인구가 3년은 먹는다니 그 크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또 한가지 자랑거리는 물이란다. 세계 담수의 상당량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단다. 북쪽의 5대호는 크기도 크려니와 깊이 또한 상당해서 담수량은 그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미국의 주는 공식적인 이름 외에 주마다 애칭이 있단다. 뉴저지주는 산이 없고 평지로 이루어져 State of Garden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Delaware 주는 미국 최초로 연방에 가입했다고 해서 1st state(?)로 펜실바니아 주는 미국의 중심주라는 의미로 Key stone라고 한다고 한다. 하여튼 차는 뉴저지주를 지나 델라웨어주을 거쳐 Maryland주로 접어든다. 유명한 Baltimore city를 우측으로 보면서 강을 건너 워싱턴 시로 향한다.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Park Street에 있는 李朝라는 음식점에서 육개장으로 점심을 먹는다. 이날 먹은 육개장이 너무 맵고 느끼하여 점심을 먹은 후 조금 고생을 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람 시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을 찾는데 분명히 화장실 사인을 보고 찾아갔으나 가다 보니 막다른 골목이 나오고 화장실은 없고 하여 난감했었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서 어디가 잘 못되었나를 가만히 보니 화장실 사인이 좀 헷갈리게 표시되어 있기는 했다.
9. 워싱턴 D.C 관광
우선 먼저 들른 곳이 미 의회 의사당이다. 사진에서 여러 번 보아서 그런지 흰색 돔 건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미 의사당앞에서 워싱턴 탑을 보면서
미국의 의회는 상, 하원 양원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상원 의석수가 105석으로 각주에서 2명씩 100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5명은 워싱턴 D.C 2명, 그리고 미국의 정식 주는 아니지만 식민지 관계에 있는 버진 아일랜드, 푸에르토리코 등에서도 1명씩의 상원 의원을 선출한다고 한다. 내가 워싱턴을 여행하는 중에 데모대를 보았는데 그들은 푸에르토리코를 해방시켜달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미국 의사당을 배경으로
의사당 정문 앞에 차를 내려 걸어서 한 5분 정도 올라가 의사당 계단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는다. 우리네 단체관광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특히 지금 같은 짧은 기간에 장거리 여행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듯이 “왔오” “보았오” 그리고 “나 가요” 하는 식의 관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갔다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얼굴 넣고 기념사진(아니지 정확하게는 증명사진) 한 장 찍으면 된다. 무엇이 어떻고 현재 결과는 무엇이고 왜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 졌는지에 대한 이해는 도통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증명사진 한 장으로 만족해야 하는 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다음으로 Smithsonian 박물관을 둘러본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국회의사당 앞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국회 앞 지역을 The National Mall이라 칭하고 여기에 박물관이 있는데 박물관만 해도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Hirshhorn Museum, National Museum of African Art, Arthur M. Sackier Gallery 등 여러 개다. 단체 여행의 특성 및 시간상 이 중 자연사 박물관 및 우주 항공박물관 두 곳을 관람했다. 그것도 제한된 시간으로 인하여 한 박물관에서 1시간 정도의 관람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자연사 박물관은 입구부터 심상치가 않다. 계단 위에 있는 나무모양의 화석에서 우선 기를 제압 당하는 느낌이다.
자연사 박물관 입구에 있는 화석목
박물관 관람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가이드 말이 2층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큰 청색 다이아몬드가 있으니 그것부터 보라고 한다. 우리네 사람들이야 귀가 얇으니 우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간다. 과연 있기는 있다. 그러나 보석에 대하여 아는 게 없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또는 정말 큰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다만 크다니까 큰가보다 하는 식으로 대충 넘기고 옆 코너로 발길을 돌린다. 정말 좋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질의 형성에서부터 광석의 생성까지 실제로 발굴(채굴)된 곳의 그것 그대로를 갔다 놓았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일일이 머리에 새겨놓아야 할 것들이지만 그냥 대충 넘어간다. 또 한가지는 내 영어실력이 아주 짧기 때문에 도저히 그 놈을 읽어서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일상생활의 영어도 짧은데 광석, 광물 등에 대한 단어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그저 그림과 실물을 보면서 대충 눈치로 때려잡고 넘어갈 뿐이다. 1층에는 고대 육지나 바다의 동물들에 대한 화석과 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코끼리, 맘모스, 공룡 등등 실제로 이들의 뼈를 보고 그 뼈들을 일일이 조합하여 하나의 물체를 만들어 내 놓은 것에 대하여 감탄을 할 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카메라가 어떻게 된 것인지 사진을 한 장도 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 이후에 찍은 사진 모두가 현상을 해보니 찍혀 있지 않은 빈 필름이란다. 정말 애석할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1층에는 동양 3국 ― 중국, 한국, 일본에 관한 자료들이 별도의 룸에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사랑방”이라는 코너와 “현대 도자기” 등 2개의 코너가 있었다. 이국 땅 먼 곳에서 우리의 자료를 보는 것에 감격하기도 했지만 진열된 자료가 단지 사랑방에서 애들을 가르치던 상 모양의 나무상자와 방석 그리고 담배 대 정도의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고, 도자기 코너에는 현대 세라믹 작가들의 작품 몇 점이 전시되어 있는 정도이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할 필요성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다음으로 항공우주 박물관에 들렀다. 전시관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주로 항공기에 대하여 2층은 우주선에 대한 자료와 실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의 비행기로부터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우주 탐험에 대한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하면 될까? 사실 무슨 말로 이 박물관에 대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보고 그냥 입 벌리고 감탄하고 그러나 아는 게 없어 뭐라고 논평할 처지도 못되고 그냥 그렇게 전시관을 돌다가 나왔다. 남들보다 먼저 박물관 앞에 나와 쉴 곳을 찾다 보니 적당한 곳이 없다. 길 건너 공원 벤치에 가서 앉았다. 사실 뉴욕에서부터 장시간 차를 타고 또 시차적응도 되지 않아 몸이 상당히 피곤한 상태이다. 그저 어디 누울 곳이 없나 하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돈이 아깝고 또 이러한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열심히 하나라도 더 많이 보고 느끼려고 다니고 있을 뿐이다. 의자에 앉으니 앞 공원 잔디에서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파룬궁에 대한 현수막을 걸어 놓고 뭔가 하고 있다. 얼마간 그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있는데 아주 조그만 아주머니 한 분이 딸로 보이는 여나믄살 먹어 보이는 소녀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리고 파룬궁에 관한 리프렛을 주면서 연신 뭐라고 설명을 한다.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자기들 처지를 설명하는 것 같다. 그들도 중국 땅에서 버림받고 이역 머나먼 나라에서 자기들의 이상을 펴 보이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애가 가엾다. 이 자그만 아주머니는 해 볕에 그을려 얼굴이 까맣게 타있었는데 내 머리엔 그들이 무얼 해서 먹고사나 하는 생각뿐이다.
백악관 정문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단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돌고 돌아 백악관 건물 뒤편
백악관은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정문쪽도 못보고 뒷쪽에서 한 컷....
으로 가서 건물 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는다. 그런데 그 곳을 몇 십 년 째 지키는 사람이 있다. 경비원이나 수위가 아니라 한 여자 늙은이가 반핵 반전 내용이 적힌 입간판을 세우고 외롭게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전쟁이나 핵무기의 위험을 적은 간판에 우리 글로 된 선전물까지 돌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자기 같은 것을 두르고 있어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얼굴이 상하고 발가락이 기형인 것이 아마도 핵의 피해를 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오는 지 아니면 우리의 행색이 늘 그러하듯이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어서 그랬는지 그녀는 열심히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의 열 몇 살 먹은 소년이 무엇을 했다고 하는 것 같다. 나중에 TV 뉴스를 보았는데 김철수인가 장철수인가 하는 이북에서 온 소년이 무슨 증언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이런 여행을 하다보면 왜 이곳에 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등 나 자신을 향해 불만의 소리가 나올 때가 있다. 특히 지금이 더 그러하다. 우리나라 청와대도 잘 못 가보는 인간들이 이국의 대통령궁을 보려고 하다가 그것도 정문이 아닌 뒤쪽에서 사진 한 장 찍자고 이 멀리까지 왔나 하는 생각을 하니 좀 한심한 생각도 든다.
제퍼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은 인공으로 만든 호수가에 있다. 백악관을 보고 워싱톤 100주년 기념탑을 돌아 호수가를 달리면 나온다. 포토맥 강이 워싱턴 D.C를 관통하여 흐르고, 홍수가 지면 이로 인한 워싱턴 시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래서 인공으로 호수를 만들고 물을 가두어 홍수피해를 줄이려 하였다고 하는데 글쎄 그 효과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제퍼슨 기념관에서 호수를 배경으로 한 장 찍고(사실 이 사진도 현상을 해보니 나오질 않았지만) 남 보다 일찍 차 타는 곳으로 온다. 그런데 차가 없다. 조금 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람 때도 느낀 것인데 차 특히 버스는 주차해 있지 않고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시간에 맞추어 갔다 대는 것 같았다. 또 한가지 이곳 버스의 특징은 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에는 엔진을 끈다는 것이다. 공회전에 따르는 공해 문제를 방지하겠다는 것으로 만약에 정차 중에 시동을 걸어놓다가 걸리면 처음에 벌금이 800달러 그 다음에는 수천 달러나 된단다. 그러니 차에서 내려 관람을 하고 다시 차에 타면 차안은 에어콘을 틀지 못해서 항상 무더웠다. 어찌 보면 차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할지 모르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에는 효과적인 공해방지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일정의 마지막 코스인 링컨 기념관에 들른다. 링컨에 대하여는 학교 다닐 때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노예제도, 남북전쟁, 등...... 이곳 링컨 기념관은 워싱턴 백주년 기념탑과 가운데 호수(reflect lake)를 사이에 두고 일직선상에 위치해 있다. 건물 지붕과 벽을 이루는 곳에는 미국 48개 주 이름이 Delaware 주부터 순서대로 쓰여져 있다. 나머지 2개주 ... 하와이와 알라스카 주 당국자가 자기네 주 이름을 링컨 기념관에 올려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더 이상 기록할 여백이 없이 이 2개 주의 이름은 건물 앞 바닥에 쓰여져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링컨 동상을 �어 보는 것으로 관람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기념물을 보러 갔다. 한국전 때 참전 한 나라의 이름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새겨져 있고, 공병차림의 군인들(내 생각에는 공병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하필이면 왜 공병 모양을 한 동상들을 세워 놓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을 둘러보면서 내가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시절에 일어난 한국전에 대하여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꽤 많은 세계의 나라들이 참전을 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특히 이중에는 지금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 보다 못 살게 된 나라도 있는 가 하면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나라도 있고, 내전에 휘말린 나라도 있는 것 같아 세상 이치의 오묘함을 생각하게 한다.
링컨 기념관내에 있는 링컨 동상
그러고 보니 오늘 워싱턴 관광은 워싱턴 100주년 기념탑(가이드는 이를 이쑤시개라 불렀다)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서 한 것으로 보인다. 링컨 기념관을 끝으로 워싱턴 시내를 빠져 나와 버지니아 주로 옮겨 한식당에서 뷔페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워싱턴 비행장 근처에 있는 Comfort Inn에 투숙하여 샤워를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차로 여행을 하면서 길거리에 있는 여러 개의 Inn에 대한 간판을 보았다. 우리가 영어단어를 배울 때 Inn은 여인숙 정도로 해석을 하고, Hotel이나 여관보다 한 단계 아래의 숙박시설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을 다니다 보니 보통의 숙박시설을 Inn이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맨하탄에서 Hotel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도 있었으나 Inn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곳 보다 시설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느끼는 것은 Hotel이라는 것은 대도시에 있는 것이고 Inn이라는 숙박시설은 시골이나 교외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또 한가지 미국에서 동일한 명칭을 쓰는 Inn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 같은 주인이 여러 개의 숙박시설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각자의 사람들이 동일한 이름으로 뭉쳐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내가 숙박을 했던 Comfort inn 이라든지 Holiday Inn 같은 이름은 여러 곳에서 발견 할 수 있었다.
□ 9.6(금) 맑음
10. 룰레이 동굴
아침 6:00에 일어나 조금 있으니 모닝콜이 온다. 세수하고 식당으로 간다. 이 곳 식당은 빵과 쥬스 류 그리고 우유가 있는데 우선 빵은 식빵이 없고 둥글게 생긴 무슨 보리 빵 같은 것이 있다. 냉장고에서 갓 꺼내 놓아 차가워 먹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어디에 데워 먹을 때도 없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오더니 그 빵을 반으로 갈라 토스터기에 넣고 구우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잘 구워지지 않는 지 한참을 노력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밀가루 반죽이 담겨진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몰라 한 참을 생각하는 데 옆에 무슨 기계가 있다. 우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보았던 와플이라는 것이 연상된다. 그 기계에 붓고 설명대로 조작을 해본다. 정말 2분 정도 지나니 와플 모양의 빵이 되어 나온다. 그래도 따듯하고 해서 먹기에 괜찮다. 옆에 요플레 모양의 용기가 있어 뜯어먹어 보니 맛이 괜찮다. 그래서 2개를 가져다 먹었다. 아침에 먹은 것 중 그래도 제일 나은 것 같다. 아침 7:30 여관을 출발한 버스는 Luray Caverns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 곳 고속도로에서 한 가지 배운 게 또 있다.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여러 개의 선(골)을 진행방향으로 나란히 그려놓아 차가 차선을 이탈하면 타이어 마찰로 소리가 크게 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에 이르면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것과 마찬가지(우리나라는 가로로 선을 그어 놓았다)로 차가 레인을 벗어나면 소리가 나 혹 졸던 운전자라도 정신을 차리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인들의 지혜로 느껴진다. 이것 또한 풍부한 자원에다 널따란 땅덩어리 그리고 산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이 없어 고속도로 건설이 쉬웠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속도로 옆의 나무들도 우리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인공적으로 심은 나무 아니면 절개지에 토사 유출 방지를 위하여 심어놓은 키가 작은 관목 류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자연적으로 자란 나무들로 백양나무와 가죽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버지니아 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2명 더 태우고 차는 룰레이 동굴에 10시 조금 안되어 도착을 한다. 원래 이 곳은 산골인데 어느 날 방목하던 소가 주둥이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본 목부가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가서 보니 동굴이 있었단다. 그 당시 발견된 동굴 입구는 지금의 동굴 입구에서 조금 빗나간 곳에 있다고 한다. 동굴 내부는 우리나라의 석회동굴과 크게 다를 것은 없는데 다만 규모가 좀 크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좀더 화려하고 또 관람 유도로가 잘 닦여져 있고 조명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아기자기한 동굴의 맛은 없지만 천장이 높고 종유석과 석순의 굵기와 크기가 대단하고, 아직 개척되지 아니한 굴이 상당부분 있다는 것이다.
룰레이 동굴 앞에서 폼을...
이 동굴은 사유재산이라고 한다. 동굴을 사유로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곳도 처음에는 사유재산이 아니었는데 긴 법정투쟁 끝에 사유재산이 되었다고 한다. 한데 안타까운 것은 이 동굴이 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하고 조명시설을 해 놓고 하였으니 우리나라나 이곳이나 동굴이 몸살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종유석이나 석순 모두가 물기가 없어 원래의 모습을 잃어 가는 것 같았고, 물이 고여 있어야 할 계단은 메말라 있다. 그리고 관람의 편의를 위하여 약 1.5mile을 세멘트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것 또한 굴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내인에게 물어 보았다.(이곳은 동굴 관리소에서 자체적으로 가이드를 붙여 주고 있다. 물론 영어로 이야기하는 미국인이지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석회석 동굴이나 시멘트나 같은 “stone”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단다. 하기야 세멘트와 석회동굴의 성분이 같을 지도 모르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 성류굴 또는 제천이나 영월의 석회석 동굴을 가보면 관광객 유도를 위하여 주로 철판으로 된 계단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데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곳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조명을 위하여 굴 내부의 여러 곳에 전선을 매설하고 이 것을 잘 보이지 않게 감추느라고 여러 곳을 세멘트로 감추고 있다.
이곳 기념품을 파는 곳에서 아주 싼 물건을 보았다. 산 속에 있어서 그런지 꿀 1리터를 6달러 받고 있었다. 가장 싼 물건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일행 중에 이것을 사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또 한국전 참전 용사를 위한 기념물도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동굴을 나타내는 영어단어 cave 와 cavern의 차이점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11.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아
룰레이 동굴 앞 주차장에서 2명의 아주머니를 합승시킨 버스는 11시 조금 못 되어 마지막 코스인 나이아가라폭포를 향해 북진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 맨하탄에서 우리 일행 2명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에는 현재 여행객 23명, 가이드, 운전사 이렇게 25명이 타고 있다. 차안에는 각처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물론 말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국적은 한국, 미국, 독일 등 다양하다. 우선 맨하탄에서 나를 포함해 2명이 탑승을 했다. 그리고 뉴저지주 Fort Lee 우리은행 포트리 지점 앞에서 외할머니를 포함한 6명의 가족이 탔다고 아까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한 아름 수퍼가 있는 광장에서는 60대 후반의 홀아비와 수원에서 왔다는 50대 초반의 중년부부, Holiday Inn 에서는 서부와 아트란타에서 왔다는 8명,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승차한 60대의 부부와 룰레이 동굴 광장에서 승차한 자매 등 23명이다. 이중 60대 후반의 홀아비는 혼자 여행하는 쓸쓸함을 가끔 토로하면서 시세말로 살아 있을 때 잘 하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이 곳 동생 집에 머무르면서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옵션 관광에서 돈이 없어 망설이는 등 별로 여유로와 보이지는 않았다. 이 남자와 같이 탄 수원에서 왔다는 부부는 자기들 말로는 남편이 BOA에 다닌다고 했는데 자기 동서(처형의 남편)가 GE의 무슨 하청 공장장이고 동생도 그럭저럭 미국에 기반을 잡고 사는 모양인데 본인은 한국에서 살고 싶고 부인과는 떨어져 살 수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부인은 여행 내내 미국의 생활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곳 미국에 눌러 살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궁리하느라 여행보다는 그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였고, 내내 우리에게 그 방법에 대하여 말을 걸어오곤 했다. Holiday Inn에서 승차한 사람 중 부산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한 분은 미국에 있는 여자 조카와 동행을 하고 있는데 조카애는 20대 후반으로 보일까? 그런데 학생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결혼을 한 여자 같지도 않고 좀 이상해 보였다. 우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하여 카나다 쪽 폭포를 구경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는데 이 아가씨만은 그냥 호텔에 머무른단다.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여권과 비자가 필요한데 이 아가씨는 아마 이런 조건이 구비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가이드가 언뜻 이야기한 불법체류자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은 그야 말로 오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룰레이 동굴 앞 광장에서 60대 자매 2명이 탔는데 이들은 원래 워싱턴에서 룰레이 동굴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합류하기로 되 있었단다. 그런데 안내하기로 한 그 쪽 여행사 가이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별도의 차를 타고 룰레이 동굴까지 따라와 합류하게 되었단다. 이들 중 동생이 독일에 사는데 미국에 있는 언니를 방문한 김에 미국 관광을 하는 거란다. 물론 이들도 룰레이 관광을 하기로 돈을 냈는데 못 했으니 아마 이들을 소개한 그쪽 여행사 직원은 나중에 애를 먹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행사 직원이 잘했다 거나 이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만약에 우리와 예약을 한 여행사에서 그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생각하기조차 싫어진다. 아무튼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이루더니 차츰 조화를 이루면서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그런 대로 여행의 팀웍을 이룬다.
미국의 도로는 끝이 없다. 숲 속으로 난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길옆 주변에는 잘 다듬어진 잔디가 있고 그 주변에 집이 있는가 하면 목초지가 있다. 목초를 깎아 건초더미를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이고 가끔 방목되는 소나 말들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광활한 목초지가 있는데 이를 먹을 소나 말들이 많이 보이질 않는 다는 것이다. 어디 사육장이 따로 있는 것인지 아님 실내에 가두어 놓고 기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실내에 가두어 키우기에는 목초지 규모를 감안하면 생각할 수 없어 보인다. 과연 이 들은 어디에서 사육되고 있을까? 가이드에게 목초지는 많은 데 이를 먹고 자랄 소나 말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지나 나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차는 버지니아 주를 지나 메릴랜드를 거쳐 펜실바니아 주로 접어든다. 주 경계선에서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잠시 정차한다. 휴게소는 아니지만 간단한 잡화를 파는 곳이 있고 대형 지도도 걸려 있다. 우리의 관광안내소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주 경계선이기 때문이란다. 이 곳에서 펜실바니아 지도를 한 장 얻는다. 같이 간 일행이 지도 한 장을 구해 오니 나머지 사람들이 몰려가 지도를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마 관리인이 좋게 주었을 리는 없고 무어라고 하고 주긴 준 모양이다. 하여튼 나는 지도 한 장을 구했으니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좋다. 지금 우리는 219번 도로를 따라 펜실바니아 주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여 뉴욕주 퍼팔로 시를 향해 가고 있다. 차는 숲 속으로 난 길을 달려간다. 정말 끝도 없는 길이다. 무슨 national park라고 하는데 겨울에 눈이 오면 스노우 모빌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벌써 성질 급한 일부 나무들은 단풍이 들었다. 이곳 나무들의 특징은 침엽수도 가끔은 보이지만, 대개가 활엽수라는 것이다. 나무 잎이 우리의 사시나무 잎을 닮은 것이 대종을 이루고 백양나무나 아카시아 잎을 닮은 것들도 많이 있다. white oak tree나 단풍나무도 많이 보인다. 나무들은 상당히 크게 자라 있으나 그리 굵지는 않다. 빽빽한 숲에서 자랐으니 굵게 자라기 힘들었나 보다. 중국식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고 계속 북으로 가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간이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서 달리고 달려 드디어 오후 7시경에 뉴욕주 북쪽 퍼팔로 시에 이른다. 이곳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곳까지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단다.
Skylon Tower(카나다)
카나다 쪽 폭포를 구경하지 않는 사람들 7명을 호텔에 남겨 놓고 나머지 일행은 국경을 넘어 카나다로 간다. 간단한 입국 절차로 국경선을 넘는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있는 한국식 식당 정원에서 늦은 저녁을 쇠갈비로 먹고 폭포관광에 나선다.
전망대 Skylon Tower에 오르니 한 눈에 야경 속의 폭포가 내려다보이고 조명을 받은 폭포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자태를 보이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는 불꽃놀이가 있다는 가이드의 말을 믿고 불꽃이 잘 보일 만한 폭포 근처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가간다. 한참을 폭포 물 떨어지는 시끄러운 소리와 조명에 비춰지는 광경에 취해 강가 벽에 기대어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한 점 자주빛 물체가 강줄기를 역으로 움직이다가 미국 쪽 언덕배기 부근에서 갑자기 없어진다. 신기하고 혹 도깨비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있으니 또 다른 색깔의 물체가 같은 괴적을 그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그제야 그것이 새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카나다 쪽에서 미국 쪽으로 비추는 조명 사이를 새가 날아가는데 조명 색깔에 따라 물체가 달리 보였고, 조명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져 갔던 것이다. 피곤도 잊은 체 눈앞의 광경에 도취에 있는 데 어떤 사람이 오늘은 불꽃놀이를 하지 않는단다. 지난 8월말로 불꽃놀이 행사가 끝났단다. 다시 차를 타고 카나다 면세점에 들른다. 거기서 큰애가 전화로 이야기한 화장품을 고른다. 내 영어실력도 짧지만 이 곳 점원의 화장품에 대하여 하는 것도 별로 인 것 같아 의사 소통이 잘 안되었다. 불어로 무어라고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다. 손짓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사긴 샀는데 나중에 서울 와서 보니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란다. 내 딴에는 큰마음 먹고 화장품가게엘 들렀었는데 말이다. 하기야 화장품에 관한 한 나는 아는 게 없으니 잘 못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늦은 밤 11시경에 호텔(Four Season Hotel)로 돌아와 호텔에 딸린 편의점에서 식수 1통을 1.5달러 주고 구입을 했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하루 먼 거리를 이동하느라 힘든 하루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위 시차라는 것에 적응을 했는지 별로 피곤한 것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12. 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카나다)
미국 북부(카나다 남부)지방에 소위 5대호라 불리는 호수들이 있다. 위로부터 슈피리어호, 미시간호, 휴런호, 이리호, 온타리오호 등 5개 호수가 있다. 이 중에서 이리호(Lake Erie)에서 넘친 물이 최 하류에 있는 온타리오 호로 흘러드는데 두 호수사이에는 상당한 표고 차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책에서 보니 두 호수의 표고 차는 약 100m나 된단다. 이 두 호수 사이를 흐르는 강이 나이아가라 강이고 두 호수 표고 차이 때문에 생겨난 폭포가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이리호에서 넘친 물은 나이아가라 강을 내려오다가 Grand Island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섬을 지난 물줄기는 하나로 합쳐서 흐르다가 다시 염소섬(goat island)에서 갈라져 흐르다가 각각 폭포를 이루는 데, 한 쪽은 미국 쪽 폭포이고 다른 한 쪽은 카나다 쪽 폭포가 된다. 카나다 쪽 폭포가 흐르는 물의 양이 더 많다. 그리고 물 떨어지는 곳의 패인 깊이도 70m나 된단다. 반면에 미국 쪽 폭포는 바위가 무너져 내려 있고 폭포수가 무너져 내린 암석위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져 살아난 사람은 카나다 쪽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 9.7(토) 맑음
아침 6:30 기상하여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사실 이곳 사람들은 빵을 주식으로 한다니 대신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8:00 정각에 버스는 출발한다. 염소섬으로 가서 폭포와 그 주위를 관람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염소섬은 옛날에 사람들이 겨울에 여러 종류의 동물을 방목하고 봄에 다시 찾아와 보니 다른 가축은 모두 죽고 염소만 살아 남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이 염소섬에는 현재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설이 있고 현재도 시설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테라핀 포인트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배경으로
우선 카나다 쪽 폭포를 보러 갔다. 염소섬의 Terrapin point에서 구경을 하는 데 정말 장관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다. 위대한 자연 앞에 초라한 인간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폭포의 높이가 167feet, 넓이가 2,500피트란다. 모양이 말 발급 같다고 하여 일명 Horseshoe Falls라고도 한단다. 다만 아쉬운 것은 폭포 상류 강물 카나다 쪽에 인공적으로 보를 반쯤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 염소섬 자락에도 몇 미터 가량의 시멘트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세찬 물살에 폭포가 깎여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되어 진다. Terrapin point에서 폭포 물이 떨어지는 강 아래 카나다 쪽 절벽을 바라보면 무슨 굴 같은 구조물이 몇 개 있고 그 굴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도 궁금하여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폭포근처에 있는 상가 등에서 나오는 폐수를 정화하여 배출하는 시설이란다. 이러한 하수구 하나 만드는 데도 자연과 잘 어울리게 한 그들의 정신에 어떤 배울점이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미국쪽 폭포는 2개로 나뉜다. Grand Island 섬을 돌아 나와 합쳐진 나이아가라 강물은 염소섬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이중 한 줄기가 염소섬과 미국 본토사이를 흘러내리는데 이 물줄기는 다시 조그만 섬인 Luna Island를 만나 두 줄기로 갈라지게 된다. Luna 섬과 염소섬 사이를 흐르는 물의 양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것이 이루는 폭포는 마치 달처럼 조용하고 얌전하다 하여 Bridal Veil Falls라 한다.
나섬과 염소섬 사이를 흐르는 냇물
한편 Luna 섬과 미 본토 사이를 흐르는 물이 이루는 폭포를 American Falls라 한다.
나이아가라 폭로 관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폭포 밑으로 가 물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체험하는 것(Maid of the Mist)과 폭포 밑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폭포 바로 앞까지 가서 구경하는(Cave of the Winds)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첫 번째 방법을 택하여 관광을 했는데 우선 배를 타기 위하여 9:45분쯤 ticketing을 하고 줄을 섰다. 정각 10:00 배는 출항을 하고 서서히 카나다 쪽 폭포로 접근을 한다. 배는 미국 쪽과 카나다 쪽에서 번갈아 출항을 하는데 카나다 쪽 배가 폭포관광을 하고 내려오면 미국쪽 배가 올라가는 방법으로 교대로 진행되었다. 배를 타기 전에 파란색 우의를 나누어주는 데 폭포 물 튀는 것으로부터 옷 젖음을 방지하기 위함이리라. 카나다에서 출항하는 배에 탄 사람은 노랑색 우의를 입었다. 배가 서서히 폭포에 접근을 하자 세찬 바람이 분다. 그리고 물방울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아예 소나기 오는 것 보다 더한 물이 얼굴과 몸 전체에 쏟아 붇는다. 다행히 우의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흐르는 물은 아랫도리를 다 적신다. 한 발을 들어 우의 자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배 전에 무릎으로 고정시키고 나머지 발로 지탱을 한다. 뭐라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없다. 눈을 뜰 수도 없다. 우의를 비틀어 얼굴을 우의로 가리고 우의 속에서 눈을 뜨고 폭포를 바라본다. 다만 희뿌연 것이 보일 뿐이다. 폭포전체를 볼 수는 없지만 물 떨어지는 웅장한 소리에 나 자신이 놀랄 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배는 서서히 폭포 밑을 빠져 나와 하류로 이동을 시작한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폭포의 위용을 바라본다. 내려오다가 미국 쪽 폭포를 보니 카나다 쪽 그것 보다 정말 작게 느껴진다.
미국과 카나다 국경을 이루는 다리와 나이아가라 폭포(미국)
12. 다시 맨하탄을 향하여
배에서 내려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사실 이 사진도 현상을 해보니 나오질 않았다) 11시 경 버스에 올라 뉴욕시를 향해 출발한다. 펜실바니아 주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여 남으로 오는 길은 북으로 갈 때의 길 풍경과 별로 다를 것은 없지만 좀더 동쪽으로 치우친 길이라 그런지 조금은 마을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가물어 그런지 길옆의 풀이 메말라 가고 있고, 성급한 나무의 잎들이 물들어 가는 놈도 있다. 한참을 달려 어딘지 모르나 그 유명하다는(여자들은 안단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코닝 유리공장에 들러 볼일을 보고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유리 제품의 가격이 그렇게 비싼지는 여기서 처음 알았다. 무슨 작품 같은데 Swan dance라고 되어 있던가 dancing swan 이던가 하는 작품의 가격이 무려 40,000미달러 그리고 “풍선경주” 라 불리는 제품가격은 15,000불이 붙어 있다. 전시품을 이리저리 보다가 유리로 되어 있는 녹색의 예쁘장한 뚜껑이 있는 컵을 발견하고 몇 개 사서 직원들 선물로 줄까 하는 생각에 가격을 보니 28달러라 되어 있어 너무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왕에 고른 것 한 두 개 사려고 자세히 보니 made in china라 적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집었던 컵을 다시 제자리 놓고 돌아섰다. 정말 미국에는 made in usa는 없단 말인가?
돌아오는 길에 한아름 수퍼 앞과 Fort Lee에서 각각 전전날 태운 사람들을 내려주고 차는 저녁 7시가 조금 못 되어 맨하턴 한빛은행 앞에 도착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날 뉴욕시내를 관광하고 헤어진단다. 맨하탄에서 내린 우리는 저녁도 먹지 않고 바로 한국인이 운전하는 콜택시를 타고 J.F.K 공항으로 가 밤 11:55출발하는 비행기로 귀국 길에 올랐다.
13. 여행을 마치며
앵커리지에 착륙한 비행기는 약 2시간을 넘게 대기 하다가 다시 이륙하여 어둠을 따라 계속 서쪽으로 비행한다. 기내식을 먹고 잠에 빠진다. 이제 여행을 끝낸다는 안도감에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조금 걱정되는 것도 있다. 겨우 시차에 적응되었는데 다시 시차 때문에 고생을 할 생각을 하니 피곤하다는 생각도 든다. 한참을 잤나 보다.
독
도 상공에서 본 일출 광경
스크린에 비행기가 일본 니이카다 상공을 날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고 있다. 그리고 동해 바다, 독도 위를 날아간다. 창 밖을 보니 하늘 저쪽으로 구름 낀 하늘에 시뻘건 빛이 보인다. 수해가 심했다는 동해안 상공을 거쳐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인천공항에 우리를 내려준다.
이번 여행이 물론 업무수행을 위한 것이었지만 무리하게 시간을 내어 미국 동부를 돌아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개괄적으로나마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맨하턴의 체계적인 도시 시스템,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질서 의식의 부재,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교포들의 삶, 넓은 땅, 호수, 숲 등 자연적 특성 등등을 보고 느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본다. 높은 산이 없는(물론 동부지역만 보아서 그럴 거다) 우거진 나무숲을 가진 산을 보면서, 또 드넓은 대지의 곡물 생산량이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서, 단지 나이아가라 폭포 하나 때문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돈을 뿌리고 가고, 이것 하나로 먹고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땅덩어리는 좁지만 우리도 저 같은 폭포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한편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민 생활상이나 문화적 특성을 알려면 사람과 접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택하여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럴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4.. 비용
이번 여행에서 총 여행비용은 물론 회사에서 지급한 돈으로 충당했다.
원화지급
항공임 및 수수료 1,525,700 공항버스비, 전철비, 택시비 25,000
출국세 10,000 사무소 직원 선물비 30,000
계 1,590,700원
미달러 지급
호텔비 3박 206달러, 아침식사비 9.5 공항택시비 22.5, 전화카드 5
맨하탄 시내 관광 70, 워싱턴, 룰레이동굴, 나이가라 폭포 관광 350
신문 0.5, 식수 2병 3.0, 지하철 1.5, 화장품(선물) 128, 술1병 78,
담배 11, 사무실 직원 선물 119, 호텔, 식당 팁 등 28.5
계 1,031.5달러(1,258,000원)
합계 2,848,700원
15. 끝으로
나는 그 동안 국내외 여러 곳을 많이 돌아 다녔다. 출장이건 사적으로 한 여행이건 많은 여행을 했다. 단지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서 이기도 했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잠시나마 나 자신을 돌아보고 또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이다. 그러나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단지 기억하려고 했지 이를 기록으로 남겨둔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게을렀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러나 이제 나이도 들어가고 또 그 기억의 지속성에 한계도 느끼고 해서 이번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글을 써 보았다. 하지만 워낙 글 솜씨가 없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느낀 대로 잘 표현이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경험으로 앞으로 좀더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도 해 본다.